"축구 해보지 않을래?" 그 때 선택했더라면?

"너 한번 축구 해보지 않을래?"

 

내가 초등학생이였던 어느 날, 나는 친구와 함께 운동장에서 공을 차고 있었다. 그러던 그때 저만치 멀리서 보고 있던 한 아저씨가 내게 와 이런 말을 건냈다. '너 한번 축구 해보지 않을래?' 아저씨는 내게 축구팀에 들어오기를 권유했다. 어렸던 나는 그 아저씨의 말에 기쁘기도 했지만 아저씨를 믿을 수 있을 지 반신반의하며 부모님께도 말씀드렸다. 부모님 역시 이 일을 크게 생각치 않으셨고 결국 흐지부지 지나간 일이 되어 버렸다. 

 

지금의 나는 여전히 축구를 좋아한다. 학창시절엔 무슨 일이 있더라도 새벽 2시, 4시에 하는 해외 축구 경기를 빠짐없이 보곤 했다. 지금은 아침 일찍 출근을 해야하기 때문에 평일 새벽 경기는 못보지만, 간혹 주말 경기를 챙겨보기도 한다. 제작년엔 심지어 내가 좋아하는 영국 축구팀의 경기장을 찾아, 직관을 하며 버킷리스트 하나를 지우기도 했다. 

 

그 때 만약 내가 그 아저씨를 따라 축구를 시작했더라면 어땠을까? 세상엔 평행우주라는 썰이 있다. 만약 그 평행우주에서의 나는 지금 축구선수가 되어 있다면 현재의 나와 아주 다른 삶을 살고 있지 않을까. 가끔 여러 선택의 기로에서 다른 선택을 했다면 어땠을 지 상상해본다. 그렇게 한다면 삶을 더 신중히 살지 않을까 해서...

상대방에 대한 관심은 편안함을 주는 연결고리

서로에게 편안함을 느끼기 위해선 상대방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다. 반대로 생각하면 상대방이 나에 대한 관심을 보일 땐, 내가 어떠한 주제로 대화를 하는지 어떤 행동을 하는지에 대해 상대방이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 지 걱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소심한 편이다. 나와 같이 소심한 사람에겐 같이 있는 사람이 불편하다 느끼면, 항상 어떤 주제로 대화를 해야 이 사람이 재밌어할까, 사소한 농담을 해도 괜찮을까 조심스러워진다. 이 사람이 나를 안 좋아하면 어쩌지? 나와 같이 있는 시간이 지루하면 어쩌지? 속으로 혼자 전전긍긍하며 침묵을 지키게 된다. 침묵이 길어질 수록 상황은 점점 더 불편해져가고 상대방 또한 내 불편함을 느끼는 듯 하다.

 

반대로 내가 먼저 침묵을 깨고 상대방에 대한 관심을 표하면 어떨까? 나는 내가 경험하지 못한 상대방의 경험에 대해 듣는 것을 좋아한다. 먼저 상대방의 경험을 물어보고 경청하면, 상대방은 서서히 마음의 문을 열게 된다. '이 사람이 내게 관심을 갖는 것 같으니, 내 이야기를 해도 좋아하겠구나'하는 생각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서로 대화를 주고 받다 보면, 상대방도 내게 관심을 갖고 둘과의 관계가 많이 가까워졌음을 느낀다. 물론 일방적인 관심으로 끝이 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내가 모든 사람을 다 좋아하지는 않듯이, 나도 모든 사람에게 관심받을 순 없음을 깨닫는다면 큰 문제는 되지 않을 것이다. 

 

지금도 옆에 불편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있다면, 먼저 말을 걸어보는 게 어떨까? 그렇다면 편안함을 느끼게 될 것이다.

 

매번 달라지고 있는 것을 느낀다

매일 글을 쓴다고 달라질까?

 

독자들에게 잘 읽히는 글을 쓰는 작가 분들은 본래 태어날 때부터, 글을 잘쓰는 엄청난 능력이 있는 건 아닐까?

 

나는 항상 이러한 생각에 사로잡혀, 글을 쓰는 것을 두려워 했다. 그렇다. 나는 글을 쓰는 재주가 없다.

입시 준비로 인해 논술 학원에 다닐 때도, 내가 쓴 글은 선생님과 친구들에게도 보여주기 부끄러운 글들이였다. 다시 읽어도 이게 무슨 내용의 글인지 나조차 이해를 하지 못했다. 성인이 된 지금도 지인과 문자를 주고 받을 때나, SNS에 포스팅을 할때도 내 생각을 오로지 전할 수 있을 지 걱정이 앞선다. 

 

이번 좋은 기회를 통해 다른 분들과 함께, 30일 글쓰기를 시작해보았다. 처음엔 말도 안되는 글이라도 꾸준히 써보고자 이 한달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엉터리 같은 글이라도 쌓이면 기본적인 내용이라도 전달할 수 있는 글이 되지 않을 까 희망을 안고... 

 

중순이 지난 지금은, 내 생각을 자유롭게 내 맘대로 표현할 수 있는 공간이 생긴 것 같아, 글의 완성도라는 부담을 벗어던진 것 같다. 사실 지금도 내가 쓰고 있는 이 글이 다른 사람들에게 잘 전달이 될지는 자신이 없다. 하지만 최소한 '나' 라는 독자에겐 읽힐 수 있는 글을 쓸 수 있지 않을까. 그 기대로 오늘도 늦은 밤 내 생각을 노트에 적어보고 블로그에 옮기고 있다.

 

매일 글을 쓴다고 달라질까? 달라질 것이다. 아니 매번 달라지고 있다. 언젠가는 모두에게 공감을 살 수 있는 글을 적기를 바란다.

 

 

여러분은 위험에 어떻게 대응하시나요?

동물들에겐 맹수를 맞딱드렸거나 무리 내 서열을 정하기 위해 싸움을 할 때 대응하는 2가지 방법이 존재한다.
상황에 직접 맞서싸우거나. 그 상황으로부터 멀리 도망가거나.

 

이렇게 동물들이 위험한 상황에 대응하는 방법은 사람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감정을 상하게 한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과 결판을 내고자 직접 얘기를 하거나, 서서히 거리를 두면서 그 사람으로부터 도망갈 수 있다. 하고자 하는 일이 제대로 잘 안될 때는, 끝까지 파고들거나 포기하고 다른 중요한 일을 찾을 수도 있다. 

 

물론 힘든 상황으로부터 도망만 가는 것은 옳지 않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위험에 대응하기 위해 필요한 노력의 크기를 가늠하지않고 무조건 버티라고만 말하는 것 같다. 포기하고 그 상황로 부터 도망가는 것을 죄인것 마냥 포기하는 사람들에겐 실패자의 낙인을 찍어버린다. 이러한 낙인은 본인 스스로에게도 큰 부담을 지우게 된다. 하지만 때때로 힘들다고 생각하는 상황에서 벗어나, 다른 방법, 다른 관점으로 해결해보려는 자세도 필요하다.

 

나와 같은 경우도 그렇다. 더 좋은 환경에서 공부하고자 대학편입을 준비한 적이 있었다. 1년간 하루 15시간씩 열심히 공부해보았지만, 노력이 부족했던 운이 부족했던 좋지 못한 결과를 받았다. 그때의 실망감과 허탈함은 평생갈 줄 알았다. 하지만 이 계기로 다니던 학교에서 잠시 도망치잔 생각에 교환학생을 가게 되었고, 오히려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지게 되었다.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게한 기회였던 것 같다. 

 

지금은 그 때의 열심히 공부했던 기간에 대해 아쉽지 않다. 결과는 좋지 못했지만 살면서 제일 열심히 노력한 시간이였고 더불어 다른 세상과 관점을 갖을 수 있었던 소중한 기회였기 때문이다. 이젠 내 맘대로 되지 않는 일이 있을 때, 너무 조급해하지 않는다. 이 일이 아니더라도 다른 할 일은 많고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 또한 많을테니깐.

야근은 만병의 원인이다.

인턴 3개월째. 6시 정시 퇴근하는 시간이 되면 인턴 동기들은 내게 퇴근 안하냐고 물어본다. 나는 좀 더 할 일이 남았다며 동기들에게 먼저 퇴근하라 말을 한다. 동기들을 먼저 보내고 자리에 앉아 오늘 끝내지 못한 일을 해본다. 컴퓨터를 너무 오래 봐서인지 눈이 쓰라리고 정신이 멍해져 갔다. 드디어 마무리! 파일의 이름을 최종 v.9라고 짓고 시계를 보니 벌써 11시가 훌쩍 넘어있었다.  

 

"왜 그렇게 열심히 해요?"

 

요새 인턴 동기들에게 자주 듣는 말이다. 요즘엔 인턴은 야근도 잘 안한다고 하더라. 친구들은 최저시급을 받아가며 야근까지 하냐 자기들이 성을 낸다. 워라벨은 본인이 챙겨야 한다며 일은 일이고 저녁 여가시간을 꼭 챙겨야 된다나뭐래나. 사실 딱히 취미 생활을 갖고 있지 않은 나는 집에 가면 시간을 낭비하기 일쑤였다. 집에서 저녁을 먹으며 텔레비전을 보기도 하고 근무시간 못 봤던 핸드폰을 만지작 거린다. 그러다보면 벌써 얼른 자야할 시간이 온다. 

 

그러다보니 두 세시간 사무실에 남아 무언가를 하고 나면 집에서 맛보지 못한 보람을 느낀다. 하루에 대한 성과를 산출물, 엑셀, PPT파일 하나라도 남겨지기 때문이다. 점점 사무실 컴퓨터에 쌓이는 파일들은 내 지식이 되고 경험이 되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나는 요즘 야근을 스스로 하기도 한다. 물론 집에 얼른 들어가고 싶은 때도 있지만 야근의 혜택 아닌 혜택(?)을 받을 때도 있다. 야근 시간에 남겨진 직장 상사/동료들과 할 수 있는 대화가 있고, 꼰대같지만 직장상사분들에게 더 열심히 일 하고 있다는 인상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9 to 6는 기본, 야근은 덤으로 주는 경험치라고 할까...

 

프로야근러.

 

아직 프로까지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야근에 익숙해졌다는 것 만으로도 아마추어야근러는 될 수 있지 않을 까. 

 

 

사람들은 서로 맞물려 살고 있다

세상은 크고 작은 톱니바퀴들로 이루어져있다. 제각각의 톱니바퀴들이 제 자리에서 열심히 돌아가며 작은 구성품 하나하나가 중요한 역할을 하며 없어서는 안될 존재가 된다. 사람들과의 관계도 수많은 톱니바퀴로 이루어져 있다.  다른 사람들과 얽히고 설키며 다양한 관계 속에 한자리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는 것을 좋아한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라는 안락함과 내 자리 한 곳 있다는 편안함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간혹 연인이나, 친구들, 직장상사, 동료들이 나를 필요로 할 때 기분이 좋아진다. 

 

"다들 강준씨만 찾아요"

"너가 없으면 안돼"

"그래도 너가 있어서 다행이야"

 

이처럼 다른 사람들이 나를 찾을 때면 나는 그사람과의 관계에서 소속감을 느낀다. 사적인 이유이던 일 때문이던 내가 필요한 자리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내가 더 열심히 살아가는 동기를 찾게 된다. 내가 소속감을 느끼는 그 사람들에게 보답하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작은 톱니바퀴가 되고 싶다. 비록 크기는 보잘 것 없이 작지만, 없어서는 허전한 그런 톱니바퀴가 되고싶다.

일방적인 대화는 스트레스!

낯선 사람과의 소개팅, 처음 보는 사람들과의 조별과제와 프로젝트들. 살다보면 모르는 사람과 처음 만나는 때가 많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서로 자신에 대해 소개하며, 공감되는 이야기와 새로운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시간이지 싶다.

 

나는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때면, 나에 대해 말하는 것 보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것을 더 좋아한다. 처음 만난 사람들에 대한 호기심과 그 사람들이 말하는 내가 경험하지 못한 것에 대한 관심이 가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이유.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고 혼자만 말하는 사람을 무척 싫어하기도 한다.

 

내겐 그런 친구 하나가 있다. 여러 친구들과 모여있을 때 조차 언제나 자신의 이야기만 늘어놓는다.

 

'자기가 지난 주말에 갔던 식당 음식이 얼마나 맛이 없었는지'
'자기 여자친구가 사소한 이유로 삐져 연락이 안된다든지'

'자신의 회사 상사가 얼마나 자기를 괴롭히는 지'

 

 그 친구에 대해 궁금하지 않은 것까지 듣곤 했다. 몇번은 그 친구의 이야기를 그만 듣고 싶어, 슬그머니 다른 화제로 돌리면서, 다른 친구들에게 말할 기회를 주고자 한 적도 있다. 하지만 그 친구는 다른 친구들의 말을 다 잘라가며 다시 자신의 이야기로 되돌아가곤 했다. 

요즘 지내다 보면 이 친구 뿐만 아니라 본인 이야기만 하는 사람들이 있다. 상대방이 관심을 갖고 있는지 없는지 조차 신경쓰지 않고 자기가 한 일들을 자랑스럽게 늘어놓는다. 공허하게 떠들어대도 듣는 이는 없는 것 같지만...

 

이런 사람들을 보면 나는 그러지 말아야 겠다는 생각에, 다른 사람과 대화를 할 때 조심스러워진다. 먼저 상대방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관심있어할 만한 화제를 찾아본다. 그리고 서로 공감되는 이야기를 하고자 노력한다.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올바른 소통법이라 생각한다.

내겐 나만의 방을 내 방식대로 꾸미고 싶은 꿈이 있다. 어릴 적엔 식탁의자 위에 이불을 걸쳐 작은 움막을 만들고, 그 안에 들어가 노는 것을 즐겨 했다. 그 공간이 아늑하니 마치 나만의 공간이라 느껴지곤 했다. 그때부터 내 방을 꾸미고픈 꿈을 가졌는 지도 모른다.


심플한 파란 벽은 이케아를 떠올리게 해준다.

지금도 내 방을 완전히 바꾸진 못하지만, 방 안에 변화를 가져오려고 가구 아이템을 하나하나 사 모으고 있다.

나는 이케아를 좋아한다. 이케아 만의 심플한 디자인은 멀디먼 북유럽 스웨덴의 이국적인 느낌을 주었다. 또한 직접 가구를 만들기 위해 나사를 조이는 과정은 내가 원하는 방을 직접 만드는 기분을 흠뻑 느끼게 해주기 때문이다.

 

뭔가 공부에 집중하는 기분을 들게 하는 테르티알 스탠드. 책을 눈높이에서 자주 볼 수 있도록 하려고 직접 짠 브르홀트 선반.

간접등으로 방 안에 감성을 일으키는 레르스타 플로워스탠드...등등

 

이케아 매장에 들어서면 다양하게 꾸며놓은 쇼윈도 룸도 좋다. 다양하게 꾸며놓은 방들을 레퍼런스 삼아 내 방을 어떻게 꾸며볼 지 상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쇼윈도룸을 돌고돌아 마음에 드는 제품들을 사진으로 찍어두었다가 이케아 밖으로 나가기 전까지 살까 말까 고민하게 만드는 점도 재미있다. 

 

이렇게 내가 좋아하는 이유들이 많기 때문에 계속 이케아를 찾는 것 같다. 언젠가는 내 방 전체를 이케아의 가구들과 함께 파란색 페인트로 물들이는 건 아닐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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