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을 넘는 것. 다른 사람의 영역으로 침범하는 건 아닐까

모든 사람들은 자신만의 영역을 갖고 있다. 이것이 내 땅, 우리집이라는 물리적인 영역일 수도 있고, 명예와 타인과의 거리 등 심리적인 영역일 수 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영역에 침범해하는 것을 불쾌해한다. 자신의 집에 타인이 허락없이 출입하는 것은 가택침입죄에 성립하고, 개인의 프라이버시에 해당하는 질문을 들을 때면 매우 언짢은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저번 주, 나는 가깝다 생각했던 지인에게 비밀아닌 비밀을 공유한 적이 있다. 비밀을 공유한다는 건 그만큼 믿을 수 있기 때문이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 지인은 내가 보는 앞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내 비밀을 털어놓는 것이였다. 그것도 장난스레. 물론 그렇게 심각한 비밀은 아니였지만, 충분히 내 프라이버시에 가까운 영역에 해당하는 것이였기에 기분이 좋지 못했다. 또한 그 지인과의 관계도 어느 정도 거리를 두어야겠다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만큼 내 영역을 침범한 행동은 내게 가깝던 사람마저 용납못할 행동이였던 것이다.

 

요즘 유튜브 채널 중 워크맨의 '선넘규'로 알려진 장선규 아나운서가 화재이다. 선을 넘는 다는 것. 물론 격식을 깨고 새로운 접근방법이기도 하지만,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라면 그것은 옳지 못한 것이지 않을까. 이 계기를 통해 나 또한 다른 사람의 영역을 침범하진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잦은 벼락치기는 폭풍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나는 모든 것에 빨리 싫증을 내는 편이다. 학창시절 공부할 때도 '국어, 영어, 수학, 사회' 공부하기 지루해지면 다른 과목으로 돌려가며 공부를 했다. 그토록 읽고 싶었던 책조차 읽기 시작하면, 얼른 다른 책을 읽고 싶어 끝까지 못 읽었던 적도 많다. 이런 성격으로 인해 짧은 기간안에 결과를 얻을 수 있어야, 하던 일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마칠 수 있었다.

 

스무살쯤이 되서야 이러한 내 성격을 조금씩 이해할 수 있었다. 내게 주어진 기한이 없으면, 하던 일에 게을러지고 쉽게 싫증이 났던 것이다. 그래서 이를 해결하고자 생각해본바, 매번 내게 데드라인을 스스로 만들어주면 될 일이였다. 운동을 시작하고 싶다면 먼저 마라톤을 신청했다. 한번도 참여해보지 못한 마라톤이 걱정되어 적어도 일주일에 3~4번 운동장을 뛰었다. 관심있어하던 분야에 공부를 하고 싶다면, 관련된 자격증을 알아보았다. 자격증 시험 일정을 중심으로 공부 계획을 세웠다. 이렇게 매번 스스로 데드라인을 만들게 되면, 물론 하루하루가 바쁘고 피가 말라가는 듯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되돌아보면, 쌓여있는 결과물들이 제법 되었었다.

 

예전에 한 편의 TED 영상을 본 적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벼락치기를 하고 있고, 지금 당장 미루지 말고 시작하라'라는 주제로, 재미있는 슬라이드와 공감되는 내용으로 아직까지 기억하고 있다. 이 TED 영상처럼 하던 일을 게으르게 미루지 않고 지금 당장 꾸준히 할 수 있었음 얼마나 좋을까. 나를 포함해 많은 사람들이, 이를 바로 실천하기 어려운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더 많은 벼락치기를 자주 해보는 건 어떨까? 잦은 벼락치기도 쌓이고 쌓이면 거대한 폭풍이 될 수 있으니.

 

"축구 해보지 않을래?" 그 때 선택했더라면?

"너 한번 축구 해보지 않을래?"

 

내가 초등학생이였던 어느 날, 나는 친구와 함께 운동장에서 공을 차고 있었다. 그러던 그때 저만치 멀리서 보고 있던 한 아저씨가 내게 와 이런 말을 건냈다. '너 한번 축구 해보지 않을래?' 아저씨는 내게 축구팀에 들어오기를 권유했다. 어렸던 나는 그 아저씨의 말에 기쁘기도 했지만 아저씨를 믿을 수 있을 지 반신반의하며 부모님께도 말씀드렸다. 부모님 역시 이 일을 크게 생각치 않으셨고 결국 흐지부지 지나간 일이 되어 버렸다. 

 

지금의 나는 여전히 축구를 좋아한다. 학창시절엔 무슨 일이 있더라도 새벽 2시, 4시에 하는 해외 축구 경기를 빠짐없이 보곤 했다. 지금은 아침 일찍 출근을 해야하기 때문에 평일 새벽 경기는 못보지만, 간혹 주말 경기를 챙겨보기도 한다. 제작년엔 심지어 내가 좋아하는 영국 축구팀의 경기장을 찾아, 직관을 하며 버킷리스트 하나를 지우기도 했다. 

 

그 때 만약 내가 그 아저씨를 따라 축구를 시작했더라면 어땠을까? 세상엔 평행우주라는 썰이 있다. 만약 그 평행우주에서의 나는 지금 축구선수가 되어 있다면 현재의 나와 아주 다른 삶을 살고 있지 않을까. 가끔 여러 선택의 기로에서 다른 선택을 했다면 어땠을 지 상상해본다. 그렇게 한다면 삶을 더 신중히 살지 않을까 해서...

상대방에 대한 관심은 편안함을 주는 연결고리

서로에게 편안함을 느끼기 위해선 상대방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다. 반대로 생각하면 상대방이 나에 대한 관심을 보일 땐, 내가 어떠한 주제로 대화를 하는지 어떤 행동을 하는지에 대해 상대방이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 지 걱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소심한 편이다. 나와 같이 소심한 사람에겐 같이 있는 사람이 불편하다 느끼면, 항상 어떤 주제로 대화를 해야 이 사람이 재밌어할까, 사소한 농담을 해도 괜찮을까 조심스러워진다. 이 사람이 나를 안 좋아하면 어쩌지? 나와 같이 있는 시간이 지루하면 어쩌지? 속으로 혼자 전전긍긍하며 침묵을 지키게 된다. 침묵이 길어질 수록 상황은 점점 더 불편해져가고 상대방 또한 내 불편함을 느끼는 듯 하다.

 

반대로 내가 먼저 침묵을 깨고 상대방에 대한 관심을 표하면 어떨까? 나는 내가 경험하지 못한 상대방의 경험에 대해 듣는 것을 좋아한다. 먼저 상대방의 경험을 물어보고 경청하면, 상대방은 서서히 마음의 문을 열게 된다. '이 사람이 내게 관심을 갖는 것 같으니, 내 이야기를 해도 좋아하겠구나'하는 생각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서로 대화를 주고 받다 보면, 상대방도 내게 관심을 갖고 둘과의 관계가 많이 가까워졌음을 느낀다. 물론 일방적인 관심으로 끝이 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내가 모든 사람을 다 좋아하지는 않듯이, 나도 모든 사람에게 관심받을 순 없음을 깨닫는다면 큰 문제는 되지 않을 것이다. 

 

지금도 옆에 불편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있다면, 먼저 말을 걸어보는 게 어떨까? 그렇다면 편안함을 느끼게 될 것이다.

 

매번 달라지고 있는 것을 느낀다

매일 글을 쓴다고 달라질까?

 

독자들에게 잘 읽히는 글을 쓰는 작가 분들은 본래 태어날 때부터, 글을 잘쓰는 엄청난 능력이 있는 건 아닐까?

 

나는 항상 이러한 생각에 사로잡혀, 글을 쓰는 것을 두려워 했다. 그렇다. 나는 글을 쓰는 재주가 없다.

입시 준비로 인해 논술 학원에 다닐 때도, 내가 쓴 글은 선생님과 친구들에게도 보여주기 부끄러운 글들이였다. 다시 읽어도 이게 무슨 내용의 글인지 나조차 이해를 하지 못했다. 성인이 된 지금도 지인과 문자를 주고 받을 때나, SNS에 포스팅을 할때도 내 생각을 오로지 전할 수 있을 지 걱정이 앞선다. 

 

이번 좋은 기회를 통해 다른 분들과 함께, 30일 글쓰기를 시작해보았다. 처음엔 말도 안되는 글이라도 꾸준히 써보고자 이 한달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엉터리 같은 글이라도 쌓이면 기본적인 내용이라도 전달할 수 있는 글이 되지 않을 까 희망을 안고... 

 

중순이 지난 지금은, 내 생각을 자유롭게 내 맘대로 표현할 수 있는 공간이 생긴 것 같아, 글의 완성도라는 부담을 벗어던진 것 같다. 사실 지금도 내가 쓰고 있는 이 글이 다른 사람들에게 잘 전달이 될지는 자신이 없다. 하지만 최소한 '나' 라는 독자에겐 읽힐 수 있는 글을 쓸 수 있지 않을까. 그 기대로 오늘도 늦은 밤 내 생각을 노트에 적어보고 블로그에 옮기고 있다.

 

매일 글을 쓴다고 달라질까? 달라질 것이다. 아니 매번 달라지고 있다. 언젠가는 모두에게 공감을 살 수 있는 글을 적기를 바란다.

 

 

여러분은 위험에 어떻게 대응하시나요?

동물들에겐 맹수를 맞딱드렸거나 무리 내 서열을 정하기 위해 싸움을 할 때 대응하는 2가지 방법이 존재한다.
상황에 직접 맞서싸우거나. 그 상황으로부터 멀리 도망가거나.

 

이렇게 동물들이 위험한 상황에 대응하는 방법은 사람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감정을 상하게 한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과 결판을 내고자 직접 얘기를 하거나, 서서히 거리를 두면서 그 사람으로부터 도망갈 수 있다. 하고자 하는 일이 제대로 잘 안될 때는, 끝까지 파고들거나 포기하고 다른 중요한 일을 찾을 수도 있다. 

 

물론 힘든 상황으로부터 도망만 가는 것은 옳지 않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위험에 대응하기 위해 필요한 노력의 크기를 가늠하지않고 무조건 버티라고만 말하는 것 같다. 포기하고 그 상황로 부터 도망가는 것을 죄인것 마냥 포기하는 사람들에겐 실패자의 낙인을 찍어버린다. 이러한 낙인은 본인 스스로에게도 큰 부담을 지우게 된다. 하지만 때때로 힘들다고 생각하는 상황에서 벗어나, 다른 방법, 다른 관점으로 해결해보려는 자세도 필요하다.

 

나와 같은 경우도 그렇다. 더 좋은 환경에서 공부하고자 대학편입을 준비한 적이 있었다. 1년간 하루 15시간씩 열심히 공부해보았지만, 노력이 부족했던 운이 부족했던 좋지 못한 결과를 받았다. 그때의 실망감과 허탈함은 평생갈 줄 알았다. 하지만 이 계기로 다니던 학교에서 잠시 도망치잔 생각에 교환학생을 가게 되었고, 오히려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지게 되었다.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게한 기회였던 것 같다. 

 

지금은 그 때의 열심히 공부했던 기간에 대해 아쉽지 않다. 결과는 좋지 못했지만 살면서 제일 열심히 노력한 시간이였고 더불어 다른 세상과 관점을 갖을 수 있었던 소중한 기회였기 때문이다. 이젠 내 맘대로 되지 않는 일이 있을 때, 너무 조급해하지 않는다. 이 일이 아니더라도 다른 할 일은 많고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 또한 많을테니깐.

야근은 만병의 원인이다.

인턴 3개월째. 6시 정시 퇴근하는 시간이 되면 인턴 동기들은 내게 퇴근 안하냐고 물어본다. 나는 좀 더 할 일이 남았다며 동기들에게 먼저 퇴근하라 말을 한다. 동기들을 먼저 보내고 자리에 앉아 오늘 끝내지 못한 일을 해본다. 컴퓨터를 너무 오래 봐서인지 눈이 쓰라리고 정신이 멍해져 갔다. 드디어 마무리! 파일의 이름을 최종 v.9라고 짓고 시계를 보니 벌써 11시가 훌쩍 넘어있었다.  

 

"왜 그렇게 열심히 해요?"

 

요새 인턴 동기들에게 자주 듣는 말이다. 요즘엔 인턴은 야근도 잘 안한다고 하더라. 친구들은 최저시급을 받아가며 야근까지 하냐 자기들이 성을 낸다. 워라벨은 본인이 챙겨야 한다며 일은 일이고 저녁 여가시간을 꼭 챙겨야 된다나뭐래나. 사실 딱히 취미 생활을 갖고 있지 않은 나는 집에 가면 시간을 낭비하기 일쑤였다. 집에서 저녁을 먹으며 텔레비전을 보기도 하고 근무시간 못 봤던 핸드폰을 만지작 거린다. 그러다보면 벌써 얼른 자야할 시간이 온다. 

 

그러다보니 두 세시간 사무실에 남아 무언가를 하고 나면 집에서 맛보지 못한 보람을 느낀다. 하루에 대한 성과를 산출물, 엑셀, PPT파일 하나라도 남겨지기 때문이다. 점점 사무실 컴퓨터에 쌓이는 파일들은 내 지식이 되고 경험이 되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나는 요즘 야근을 스스로 하기도 한다. 물론 집에 얼른 들어가고 싶은 때도 있지만 야근의 혜택 아닌 혜택(?)을 받을 때도 있다. 야근 시간에 남겨진 직장 상사/동료들과 할 수 있는 대화가 있고, 꼰대같지만 직장상사분들에게 더 열심히 일 하고 있다는 인상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9 to 6는 기본, 야근은 덤으로 주는 경험치라고 할까...

 

프로야근러.

 

아직 프로까지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야근에 익숙해졌다는 것 만으로도 아마추어야근러는 될 수 있지 않을 까. 

 

 

사람들은 서로 맞물려 살고 있다

세상은 크고 작은 톱니바퀴들로 이루어져있다. 제각각의 톱니바퀴들이 제 자리에서 열심히 돌아가며 작은 구성품 하나하나가 중요한 역할을 하며 없어서는 안될 존재가 된다. 사람들과의 관계도 수많은 톱니바퀴로 이루어져 있다.  다른 사람들과 얽히고 설키며 다양한 관계 속에 한자리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는 것을 좋아한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라는 안락함과 내 자리 한 곳 있다는 편안함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간혹 연인이나, 친구들, 직장상사, 동료들이 나를 필요로 할 때 기분이 좋아진다. 

 

"다들 강준씨만 찾아요"

"너가 없으면 안돼"

"그래도 너가 있어서 다행이야"

 

이처럼 다른 사람들이 나를 찾을 때면 나는 그사람과의 관계에서 소속감을 느낀다. 사적인 이유이던 일 때문이던 내가 필요한 자리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내가 더 열심히 살아가는 동기를 찾게 된다. 내가 소속감을 느끼는 그 사람들에게 보답하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작은 톱니바퀴가 되고 싶다. 비록 크기는 보잘 것 없이 작지만, 없어서는 허전한 그런 톱니바퀴가 되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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